사랑,감동 글

선물 보따리

inseong-baek 2009. 3. 12. 19:22

 

 

초등학교 졸업여행을 가던 날이었다.

나는 속으로 양계장 청소도 열심히 하고, 형제들의 심부름도 군소리 없이 해준

말 잘듣는 이 막둥이가 졸업여행을 간다면 용돈을 넉넉하게 주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 용돈"했더니 "엄마한테 받아라"하시고 "엄마 용돈"했더니

 "졸업여행 보내 주는 것도 어딘데 용돈은 무슨..." 하시는 것이었다.

난 울상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회사에 다니는 큰 언니에게 얘기를 했는데 언니는

 "월급 탄 지 오래되어서 돈이 없는데..."하며 육천 원을 주었다.

그때 나에게 육천원은 거금이었다.

하지만 학교에 가서 아이들의 얘기를 듣는 순간 기가 죽어 버렸다.

"난 이만원 받았다."

"에게, 그거밖에 없나.나는 삼만원 받았다."

그때 친구가  "현숙아, 니는 식구가 많아서 많이 받았제?"하는 거였다.

나는 얼떨결에 "응"하고 대답해 버렸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본 나는 여행 내내 식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육천원으로 식구들 선물을 다 살 수 있을까'하는

고민으로 친구와 사진도 안 찍고 , 먹고 싶은 것도 참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오빠와 새언니에게 줄 돌고래 인형을 이천원에

큰언니에게 줄 저금통 인형을 천원에,

다이어트를 한다고 벼르고 있는 둘째언니와 셋째언니에게 줄 줄넘기를 천원에 샀다.

그리곤 천 원 하는 울릉도 호박엿도 사서 맛있게 녹여 먹었다.

그런데 정작 부모님 선물은 사지 못했다.

주머니에는 천원짜리 한 장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천원으로 살 수 있는 선물은 없었다.

집앞에서 버스를 내린 나는 혹시 하는 생각으로 동네 구판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마치 엄마를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오백원하는 예쁜 꽃무늬 덧버선이 있는 것이었다.

덧버선과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주 한 병을 사고 나니 오히려 백원이 남았다.

그래서 큰언니 선물인 저금통에 백원을 넣고 딸그락 딸그락 거리며 신이 나서 집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내가 꺼내놓은 선물 보따리를 본 식구들은 배를 잡고 웃어댔다.

무안해진 나는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도 오빠집 거실에는 그때의 돌고래 인형이 떡하니 놓여있고,

시집간 언니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순진했던 막둥이 얘기를 하며 나를 놀리곤 한다.

그래도 그때의 내 모습이 너무 그립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좋은 생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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