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정기)

문경 주흘산 산행(서른 아홉번째 동행)

inseong-baek 2016. 12. 7. 10:03

2016년 12월 4일 일요일 날씨 흐림, 올해 공식적인 마지막 정기산행이다.


태종 13(1413)에 개통되었다는 문경새재길그 옛날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넘어야 했던 영남과 한양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 지금은 많은 사람이 걷는 유명해진

트레킹코스다.


오늘 우리는 문경관문 사적 제147호, 제1 관문 主屹關, 제 2관문 鳥谷關, 제3 관문 鳥嶺關 중

제1관문인 주흘관을 출발해서 주흘산 주봉과 영봉을 경유 제2관문인 조곡관을 거쳐 주차장으로

복귀하는 코스로 예정 되어 있다.


산행인원 : 39명

산행시간 : 약 6시간 40분(휴식시간 포함)

산행거리 : 약 16.3키로



트레킹 행로도






고도표





통계표




괴산 휴게소에서 사무국장 등 임원이 준비한 아침식사를 한다.

심심한 된장국에 한술의 밥, 그리고 배추김치지만 꽤나 맛있었던 식사였다.

음식 준비하신 여러분께 짐심으로 감사드린다.



07:41경 도착한 버스 전용 주차장에서 산행준비를 한다.

흐린날에 조금은 쌀쌀함은 느낀다.



꿈사 대장님의 구렁에 맞춰 간단한 몸 풀기 체조를 끝내고 07시 53분경 출발한다.



제 1관문 주흘관을 향해 가는 길엔 우리나라 전통 민요인 아리랑 기념비를 지난다.





이렇게 여섯개의 아리랑비가 세워져 있었고 백박사가 처음 대하는 것 같은 기념비가

있었다.

진도아리랑비인데  '문경새재는 눈물이로구나'라는 내용이다.

험한길에 도적들도 있었을 테고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가는 길에 꼭 이 길을 넘지

않고는 안되었을 터이니 장원급제로 기쁨의 눈물이 있었을테고 혹은 수차례 낙방으로

흘린 눈물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문경새재를 넘는 이는 장돌뱅이도 있었을 테지만 뭐니뭐니 해도 선비들이 주류를

이루었을테니 아마도 그 의미를 담아 이 선비상을 세웠을 거라는 짐작을 하며 지난다.



공연장에 걸린 대형 그림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남제1문"



기념관도 지나고





주차장에서 제1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렇게 잘 다듬어져 있었다.

자동차는 출입할 수 없고 오직 사람과 전동차(이 문에서 주차장까지)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제1관문(주흘관) 정면의 모습이다.


고갯길이 워낙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고갯길 주변에 새(억새)가 많아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또한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고갯길을 의미하는 (사이)’ 에서

연유했다는 주장이 있고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만든 고개라는 뜻에서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 처럼 새재의 어원에는 많은 유래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지리학자들이 말하는

 새로 낸 고갯길이다.(인터넷에서)





제1관문 뒷쪽의 모습이다.

문 양쪽엔 위로 오르도록 돌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 곳에서 주흘산 정상까지 4.5키로이니 주차장에서 이곳까지는 약 800여미터 되는 것 같다.




여궁폭포에 도착한다.

실같은 가는 흰물줄기가 암벽을 타고 내린다.




여궁폭포를 지나는 길에 수 많은 세월의 인고를 견딘듯한 괴목을 목격한다.

주변이 온통 암벽이라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소리없는 고통을 격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 고통의 인내가 많은 사람들의 눈길과 생각을 주고 있지 않을까.



너무나 맑디맑은 물과 낙엽이 쌓인 물 웅덩이의 모습이 겨울보다는 여름에 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개울을 끼고 주흘산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때론 이렇게 계단도 설치하여

등산에 도움을 주는 것과 자연 경관의 훼손을 방지하기도 한다.




계단을 벗어나 크고 작은 바위와 돌로 이어지는 등산로 걷는다.




여궁폭포를 지나 혜국사로 향하는 길에 앞서가던 분들 작은 목교위에서 발길을 멈추고

다리옆 커다란 고목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다리위에서 고목을 보니 이렇게 커다란 구멍이 난 기이한 모습이다.

예전에 불에 의한 상처일 것으로 추측해 본다.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파천을 했고, 나라가 은혜를 입은 사찰이라

혜국사로 불리게 되었다는 혜국사의 모습이다.




위에서의 목교에서 우측으로 가야했었는데  혜국사 턱밑까지 왔다.

작은 알바를 한셈이다.




목교에서 부터는 금강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걷기 편안한 길이 이어지고 여기서

10분을 휴식을 취한다.




우리가 맨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막차로 오는 분이 있었다, 혜국사 경내를 돌아보고 오는 중이라는...




대궐터 샘물에 도착한다.

누군가의 수고로 스텐 파이프를 타고 졸졸~  정겨운 소리를 내며 반갑게 맞아주는

맑은 샘물...


모두들 한모금씩 목을 적신다.


맑은 물이 모여지는 물받이 돌 우측 가장자리에 무슨 글씨가 새겨져 있기에

자세히 본다.

'주흘산 백번 오르니 이 아니 즐거우라! 요런 말씀이 새겨져 있다..


생각보다 가파른 산이 아니라

생각보다 바위 투성이 등산로가 아니여서 내심 즐거움이 없지 않았으니

저 말의 100분의 1인 한번이지만 기분 좋은 산행이였다.





이 대궐터부터 짐작으로 1키로는 계속 계단으로 이어는 주흘산 코스의 가장 어려운

구간이였던것 같다. 매우어려운 코스는 아니지만 쬐금 힘든 구간이 이 능선까지 이어진다.




능선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재촉한 주흘산 주봉을 향하는 길엔

우측 바위 사이로 문경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도 있었고...




좌측으로 보이는 조망권내에 구름위로 뽀족뽀족 내민 이름모를 산봉우리들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는데 전익표 고문님 저 앞 쪼족이 보이는 산이 마패산이라고 일러 준다.

백두대간에서 동 떨어져 나온 두 산봉우리가 주흘산 주봉과 영봉이라는 친절한 설명에

고마움이 맘 속 가득했다.




계속 계단으로 이어지는데 주봉 몇미터 아래서 주봉과 영봉의 갈림길이다.

우측이 주봉으로 좌측이 영봉으로 가는 길이다.




10:52경 주흘산 영봉에 도착한다. 해발 1080미터의 높은 곳이다 보니 주봉 주위의 나무들이

비바람 등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곧지 못하고 크지도 못한 모습이다.

바위위에 여느산의 모습과는 달리 작은 크기의 정상석이다.




정상 진입로에서 우측으로 10여미터 떨어진 전망하기 좋은 곳에서 바라본 문경시내의

모습이다. 우측이 문경시내인 듯 하고 그 좌측으로 작은 골이 두개가 보인다.

문경시내 머얼리 보이는 산과 산사이 운해도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10:28경에 주흘산주봉을 출발하여 영봉으로 향하는 길 우측 그러니까 문경에서 주흘산

넘어로의 작은 마을의 모습이다.  점촌시 평천리 일부이지 싶다




10:52경 주흘산 영봉에 도착한다. 주봉보다 조금 높은 1106미터이다.

여기서 점심을 하기로 한다.

산 바람을 피해 정상에서 살짝 아래쪽에 앉어서 행동식으로 에너지보충을 한다.




따뜻한 한잔의 컵피로 가슴을 녹이고 움직이지 않으니 한기가 몰려온다.

7명이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대장에게 묻는다. 어디로 오던길을 몇미터 백해서 제2관문으로

하산하는 방법과 부봉방향으로 잠시 가다가 좌측으로 돌아 가는 방법이 있다는 설명에

부봉방향으로 가기로 한다.




이 입간판 지도로를 보면서...

그런데 결과적으로 알바(잠시 돌아가는 것으로 되었다)를 하게 된다.




작가 태봉님 말씀은 비록 잠시 알바를 하지만 이런 멋진 조망을 할 수 있어서 위로를


저기가 어딜까?

태봉님도 아지랑이님도 조령산일거라는 추측을 했다.



잠시 알바한 길에서 지도를 펴서 살펴본다.

부봉을 모두 걷혀서 간다면 매우 어렵고 힘들 것이라는 의견으로 오던 길을 백해서

등산로로 아니라는 팻말이 세워진 곳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지도산으로 비탈을 내려가면 중간지점에서 합류하게 끔 되어 있었기에 용기를 내서

탈출을 시도한다.




초입은 이렇게 산죽 사잇길로 이어진다.




낙엽이 쌓여 뚜럿한 길은 없지만 빛바랜 꼬리표가 아주 가끔 보여서 다행이다 싶었다.




어렵풋한 비탈길을 내려오니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개곡으로 이어지고




잠시 계곡을 걷다보니 영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하게 되는데 잠시 헤어졌던 반가운

얼굴과 마주한다.



 

이 합류지점엔 이렇게 주봉과 영봉으로 직행하는 코스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우린 제 2관문(조곡관)을 향해 출발한다.




지도상에 꽃밭서들이라는 불려지는 잘잘한 돌들의 너덜지대엔 돌탑들이 만들어져 있다.

지나는 수 많았던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 담긴 돌탑이지 싶다.




오래전엔 이 곳이 임도였던 것 같다.


차가 지날 수 있을 것 같은 넓이의 길엔 지금은 나무들이 많이 생겨나 임도의

역할은 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오염이 되지 않아 깨끗한 공기에 깨끗한 개울물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13:18경 제2관문 조곡관 입구에 도착한다.




차가 다니지 않은 깨끗하고 넓직한 흙길에 조곡관 입구는 개울을 건너는 옛모습의 석조

다리 뒤로 고풍한 모습의 제2관문이 자리하고 있다.



 

조곡관을 배경으로 한 컷의 사진을 만들고




조곡관을 떠나 주흘관으로 향하는 길엔 갖가지 볼 거리가 만들어 져 있다.

이 폭포는 아마도 인공인 것 같다.




폭포에서 흘러가는 물을 이렇게 통나무 수로를 만들고 그 통나무 수로 끝에는 물레방아를

만들어 볼 거리를 제공한다.





길 가장자리 우측엔 이렇게 여러개의 돌탑이 만들어져 있었고 이름을 소원성취탑이라 해서

사람들의 맘을 유혹한다.




경상감사 도임행차를 설명하고 부임행사를 그림으로 표시한 바위돌이다.

누구였더라 박준환님이였던 것 같다.

둘이는 잠시 그림을 유심히 들어다 봤는데 아래쪽이 감사 탄(가마?)행열이고  위가 부사가

탄 행열인데...감사와 부사의 차이는 가마에 지붕장치가 있는 것과 없는 차이가 있음을

신기한듯 발견했다 기억이다....ㅋㅋㅋ


또 감사행열에는 무슨 깃발인지는 모르지만 깃발을 든 병사가 20여명이 도열해서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지나치면서 조금은 멋진 정자라 생각했었는데 10여미터 내려오면서 저 정자에 대한

설명을 한 비석을 볼 수 있었다.




신. 구 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 하던 귀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인처임을 알게 된다.

경상감사라 했으니 지금의 도지사쯤 되려나?

경상감사라 했으니 어쩜 지금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를 관장하던 직책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곳이 주막이였던 장소인가 보다.

아마 옛 건물은 아닌 것 같고 복원을 해 놓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길 가장자리에 踰鳥嶺村家(유조령숙촌가)이라는 것과 새재를 넘어 시골집에 묵다 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고 이 비석 넘어로 지붕을 새로 이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초가한채가

정겨운 돌담 넘어로 보인다.




주막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주막 돌담밖에 숙조령촌점에 대한 한시 몇 줄이 새겨졌고 그 아래 한글로 한자의 뜻을

설명한 세워진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아주 잠깐 시골의 전경을 느끼고 발길을 재촉한다.




타원형의 마다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에 걸터 앉아 잠시 발과 다리의 피로를 푼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의한면 옛날에는 도적들이 숨어 있다가 지나는 사람을

덮쳐 금품을 갈취하던 곳이였다고 했다.





마당바위를 지나 잠시 내려오면 조령원터라는 안내문을 만난다.




수 많은 돌을 모아 사각형으로 담을 쌓고 그 안에 장방형의 초가를 지어 공무를 위해

오가는 관리들의 숙식을 제공한던 곳이라는 설명이다,

이 곳 조령원 말고 두어곳이 더 있었다고 전해진다는 말씀...




많이 낡아 금새라도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목조 다리...

입구는 저렇게 출입을 막아 놓았다.

아마도 저 개울 건너 다리가 이어지던 곳에 다른 조령원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하며 지나친다.




지난 여름 조령산을 등산할 때 조령산 정상부근에서 바라보던 문경의 촬영세트장에

도착한다. 목조다리를 건너 바로 이어지는 세트장 입구에는 입장권을 발매하는 장소가

있어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냥 뒤 돌아 나온다.




세트장의 크기가 꽤 되어 보인다.




세트장을 끝나는 부근 입구에 입장객을 위한 저 곳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있고

역시 표를 구입해야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림의 오른쪽이 광화문 등 궁궐일부를 재현해 놓았고 중앙부근에 양반촌 그 안쪽 산기슭

에 일지매 산채, 그리고 왼쪽부근이 서민촌으로 재현 놓았다는 안내판이다.





관찰사, 현감 등의 기념비를 정비해 놓은 곳이다.

이 중에는 유일하게 철(무쇠)로 만든 기념비가 하나 있었다.

1824년에서 3년간 문경 현감을 지낸 홍로영의 비석으로 "현감홍후로영 영세불망비"라는

새겨진 비였다.




오전에 이 곳(제1관문) 주흘관을 14:13경에 통과한다.





출발할 때는 들리지 못했던 다리건너 초가와 데크길로 걷는다.




일반적이 서민이 거주하던 구조가 간단할 것 같은 장방형 초가와 그 초가를 둘러 싸고 있는

나즈막한 토담과 토담안 마당이 아닌 토담밖에 각종 단지를 정령해 놓은 모습이다.

아주 정갈해 보인는 모습이다.




개울을 따라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데크길 우측으론 대나무를 심고 키를 나즉히 잘라

대나무 잎과 줄기의 침입으로 답답할 것 같은 데크길을 시원하고 조망이 좋도록 해 놓은

모습이다.





14:33경 산행을 종료하고 주차장에서 조금 이동한 한적한 곳에서 간단히 차림으로 피로를




인터넷에서 가져온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새재를 넘으며" 라는 시로 오늘의 산행 기록을

마친다.



새재를 넘으며-정약용

  

새재의 험한 산길 끝이 없는 길

嶺路崎山虛苦不窮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가네

危橋側棧細相通

차가운 바람은 솔숲을 흔드는데

長風馬立松聲裏

길손들 종일토록 돌길을 오가네

盡日行人石氣中

시내도 언덕도 하얗게 얼었는데

幽澗結氷厓共白

눈 덮인 칡덩굴엔 마른 잎 붙어 있네

老藤經雪葉猶紅

마침내 똑바로 새재를 벗어나니

到頭正出林界

서울 쪽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네

西望京華月似弓


겨울날 서울 가는 길에 새재를 넘으며(冬日領內赴京 踰鳥嶺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