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곁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한 지 13년이 지났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내 까탈스러운 성격도 많이 무디어졌는데 잠자리만은 여전히 예민하다.
나는 조금이라도 자리나 방향이 바뀌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특히 잠귀가 밝아 옆에서 누가 코를 골면 밤을 새우기 일쑤다.
그런데 나의 예민한 잠버릇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살아온 일이 있었다.
자취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고향에서 봄방학을 보내고 내 밥을 해주시던 할머니와 함께 자취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도 며칠 동안 내가 학교에 다니는 것을 보고 싶다며 따라오셨다.
그날은 피곤해서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결에 몸이 아득한 어둠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동시에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탱크 지나가는 소리,
폭격기가 날아가는 거칠고 긴박한 소리가 내 잠을 깨웠다.
그 소리는 바로 어머니의 코고는 소리였다.
화가 난 나는 어머니를 흔들어 깨웠지만 어머니는 더 심하게 코를 골 뿐 꿈쩍도 안 하셨다.
할머니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순간 머리가 몹시 아파오면서 '연탄가스다'하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쳤다.
나는 얼른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면서 어머니와 할머니를 깨웠다.
차고 맑은 공기를 한참 쐬고 나서야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아직도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한방에서 주무시는
어머니의 코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지만 무척 정겹다.
코고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어머니를 꼬옥 안고 주무시는 아버지를 보면
빙그레 웃음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머니의 코고는 소리는 사랑 하나로 가난한 아버지에게 시집와 30여 년 넘게
억척스럽게 사신 세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 좋은 생각중에서 -
'사랑,감동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꼭꼭 씹어서 드세요 (0) | 2009.03.15 |
---|---|
언청이 오빠 (0) | 2009.03.15 |
어머니와 도시락 (0) | 2009.03.15 |
어리석은 딸의 욕심 (0) | 2009.03.15 |
어느 어머니의 20년 약속 (0) | 2009.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