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유아교육을 전공했던 나는 처음 배우는 피아노와 씨름해야 했다.
집에 피아노가 없어 집 근처 빈 교회당에 몰래 들어가 연습하곤 했는데,
한번은 갑자기 교회 분이 들어오시는 바람에 어찌나 놀랐던지...
그날 이후 나는 줄곧 학교 옥상에 마련된 북적거리는 기악실에서 연습을 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일요일 아침, 아무도 없는 텅 빈 기악실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청승맞은 기분이 들었지만 곧 마음을 달래고 열심히 연습에 몰두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선가 "진주야!"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숨가쁜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 보니 엄마가 빗속에 우산을 들고 서 계셨다.
비오는 날 한 시간 반이나 걸려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나를 찾으러 오시다니,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해서 가슴이 덕컥 내려앉았지만, 엄마는 웃기만 하셨다.
"진주야, 깜짝 놀래줄 일이 생겼다. 얼른 집에 가자."
집으로 가는 길에 중고 피아노를 사왔다는 엄마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집에 와서 피아노를 쳐보니 성능이 좋지 못했다.
기대가 무너져 화가 치민 난 엄마에게 비싼 피아노를 왜 혼자 사러갔냐고 화풀이를 해댔다.
엄마는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며 조그맣게 말씀하셨다.
"난 그저, 널 깜짝 놀래주려고 그랬던 건데..."
결국 내 성화에 못 이겨 웃돈을 주고 다른 피아노로 바꾸었는데,
결혼한 지금 내 방에 놓인 그 피아노를 볼 때면 엄마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빗속에 나를 데리러 오신 엄마에게 꼭 그렇게 화를 내고 또 굳이 피아노를 바꾸어야만 했을까.
지금 그 피아노는 내 보물 1호가 되었지만 그때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떠오른다.
- 좋은 생각중에서 -
'사랑,감동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크무늬 남방 (0) | 2009.03.16 |
---|---|
차례차례 피는 꽃 (0) | 2009.03.16 |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0) | 2009.03.16 |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0) | 2009.03.16 |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0) | 2009.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