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감동 글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inseong-baek 2009. 3. 15. 22:09

 

 

지난해 11월 어느날, 나는 회사 돈 2천 6백만원을 은행에서 현금으로 찾아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만 종가방에 담긴 그 어마어마한 돈을 거리 한복판에서 순식간에 소매치기 당했다.

순간 너무 놀란 나는 '으악'하고 외마디 비명만 지른 뒤 곧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나는 병원 침대에 링거를 꽂고 누워 있었다.

발치에 몹시 굳은 표정으로 서 있던 직장상사는 범인을 잡을 가능성도 없고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며 다짜고짜 변상을 요구했다.

의료보험도 안 되는 작은 출판사여서 회사로서도 대처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6년 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찾아서 변상하고

퇴직금조로 받은 2백만원을 손에 쥔 채 회사를 떠났다.

그 뒤로 나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6년 동안이나 일한 정든 직장이었는데 눈하나 깜박 않고 일을 처리하는 회사가 몹시 야속했다.

더구나 과로로 간염을 앓아 병원에 입원하고,

가난한 부모님께 용돈 한 번 드리지 못하면서까지 악착같이 모은돈을 하루아침에 잃은 허탈감도 컸다.

차라리 그 돈으로 부모님께 잘 해드릴것을...

홀로 가만히 앉아 잇을 때면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집에서 회사 간다고 말한 뒤 아침에 나와 온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서너 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어 출판영업을 시작했지만,

여자 혼자 하기엔 쉽지 않았다.

점심은 돈을 아끼느라 굶고 저녁은 집에 가서 먹었는데,

엄마는 몸이 약한 내가 일찍 퇴근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것을 보고 영문도 모른 채 좋아하셨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서 나는 부모님께 죄스런 마음에 전보다 착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

시간 나는 대로 집알 일을 돕고, 당뇨병이 심한 엄마를 모시고 동네를 산책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서 속으론 울음을 삼켜야 했다.

"미안해, 엄마.아무것도 못해 줘서..."

어떤 날은 차비가 없어서 관리실 아저씨에게 동전을 빌려 집을 나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급히 쓸 데가 있으니 3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햇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동안의 갈등과 고민을 마감할 죽음을 결심하고

사무실에 앉아 유서를 써 놓은 뒤 집에 전화했다.

"여보세요"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목이 잠겨 왔다.

"네가 아까 전화하고 끊었니?

안 바빠?

왜?"

"엄마, 나 사랑해?

난 엄마 많이 사랑해.알지?

근데 정말 미안해.이 못난 딸을 용서해 줘."

결국 나는 순식간에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 동안에 일어난 일을 말씀 드렸다.

그러자 엄마는 언성을 높이시더니 집에 안 들어오면 엄마가 먼저 죽겠다며 덜컥 전화를 끊으셨다.

불안해진 나는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품에 안겨 세 시간 넘게 눈이 붓도록 우는 내게 엄마는

 "네 돈이 아니어서 그런것을 어떻게 하냐"며 잊으라고만 하셨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나를 위해 밥상을 차리셨다.

애써 태연한 척하시지만 나는 안다.

당신이 눈물을 보이면 내가 더 가슴 아파할까 봐,

엄마는 딸이 목숨을 끊기라도 할까 봐 조심시러워 속으로만 울고 계셨다는 것을.

다음날 아침 엄마는 도시락을 싸주시며

"굶지마.네가 그 일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거 정말 싫다.

너와 나만의 비밀로 묻고 잊자"고 하셨다. 또 다시 눈물이 와락 솟구쳤지만 꾹 참았다.

그러나 사무실에 와서는 아무것도 못한 채 울다 지쳐 밤 8시가 넘은 시각에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버스안에서 살펴보니 엄마가 핸드폰에 메시지를 남겨 놓으셨다.

아빠랑 저녁도 안 먹고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그날 밤 엄마는 저녁을 먹은 뒤 15년 전에 산 낡은 오븐을 꺼내 빵을 만들자고 하시며

내 기분을 북돋워 주려고 애쓰셨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면서 일부러 나를 불러 옆에 재우시며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주셨다.

"네가 딱 사십이 되어 지금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것조차 잊을 수 있을 거야..."

어둠 속에서 조용조용 울리는 엄마늬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또 눈물이 나왔다.

"그만 울어. 아빠가 들으신다. 그런 힘든 일을 왜 이제 얘기해서 엄마가 아무 도움도 못 주게 했니?

하늘은 사람이 감당할 만큼의 고통만을 준단다.

너한테는 가족이 있잖아.

이제 잊으렴.눈 부으니까 그만 울고 자자."

엄마는 내 손을 꼬옥 잡았다.

다음날 출근하면서 버스를 타려고 지갑을 여는데 5만원과 쪽지가 들어 있었다.

"너 화장품 없더라. 오늘은 시루떡 할 테니까 일찍 들어오렴.방앗간 같이 가자."

지금 나는 엄마의 말씀대로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

사무실도 정리하고, 섬유회사에 다니며 적금도 알뜰히 붓지만

엄마에게 예쁜 블라우스도 사드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어머니의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라는

말을 어느 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나는 지금 감사한 마음뿐이다.

천금을 주고도 얻지 못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 깊이 깨달았으므로.

 

                       - 좋은 생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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