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감동 글

네가, 네가 좋으니까

inseong-baek 2009. 5. 2. 21:42

 

졸업 여행을 갔을 때, 그녀는 여기저기에 내 이름을 적었다.


안개 속에, 파도가 머물렀다가 다시 물러간 젖은 모래 위에
바다 소나무 껍질, 어디에나 대고 그녀가 새긴 내 이름이 굴러다녔다.


하나를 더 보탤 때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뭐해?


-너, 네 이름


-왜? 내 이름만 자꾸?


그녀 특유의 수줍음, 그 수줍음이 지나가는,
얼굴은 조금 붉어지고 입술은 오므릴 듯 말 듯,


그러다가 내리깔고 있던 눈을 한 번 동그랗게 위로 뜨면
그때 눈꺼풀이 얇게 말려 올라가는데 이내 다시 수그리며
그것이 대답이 되었다는 듯 그저 빙긋.
나는 짓궂게 그녀가 어려워할 줄 알면서 짓궂게 다시


-왜?


-응? 왜냐구?


그녀는 할 수 없이 다시 고갤 수그리며 손을 꼼지락거려보다가
-네가, 네가 좋으니까.


내 이름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타인을 내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신경숙 소설 '멀리, 끝없는 길 위에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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