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시절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던 83년 여름이었다.
우리는 여단독파 시범 훈련을 부여받고 더위도 잊은 채 연일 훈련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콤포지포,TNT, 다이너마이트 급조폭약 등을 다루는 각종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실험 하던 도중 이 하사가 불상사를 당하고 말았다.
폭발물을 도폭선에 연결해 폭파시범을 보일때는 도폭선 중간을 칼로 도려내
불꽃이 타 들어가는 것이 보이도록 해 점화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 하사는 그냥 불을 붙였고,
불꽃이 보이지 않자 점화가 되지 않은 줄 알고는 계속해서 점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꽝"소리와 함께 불이 번쩍 하는 순간 나는 온 신경이 멎어 버리는 것 같았다.
현장으로 뛰어갔을 때는 이미 이 하사의 한쪽 팔이 떨어져 있었고,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급히 이 하사의 한쪽 팔을 압박붕대로 지혈하고 , 수도 통합병원으로 긴급 후송시켰다.
그 일로 이 하사는 왼쪽팔과 왼쪽 눈을 잃고 말았다.
병원에 면회를 가 그의 처참한 모습을 보는 순간 차라리 내가 다쳤으면 하는 생각에
이 하사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너무나 후회되고 가슴이 미어졌다.
폭파시범 전, 상사인 내가 도폭선 다루는 법을 주지시키는 걸 잊지만 않았어도..
.죄책감 때문에 나는 한동안 멍해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난 내가 그렇게 간절히 원해서 썼던 검은 베레모와 정든 군복을 벗고 전역했다.
부하의 생명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내가 나라를 지킨다는 사실이 부끄럽게만 해 더 이상 군복을
입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때 나는 비겁한 도망자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부주의로 상이용사가 된 부하 몫까지 더욱 더 열심히 군 생활을 해서 나라에 충성,
봉사하는 것이 빚 갚는 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검은 베레모와 군복을 벗었던 그날의 결정이 내 마음에 못내 미련으로 남아있다.
- 좋은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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