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집안 청소를 하는데 손때 묻은 수첩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비스듬하게 누운 글씨로 봐서 엄마 수첩이 틀림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수첩을 한 장 한 장 들춰 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때 올릴 음식들,
아빠에게 섭섭했던 것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구절,
나를 야단치고 마음 아파하며 적은 몇 줄의 글들,
엄마의 인생이 고스란히 수첩 안에 들어 있었다.
수첩 중간 쯤 보고 있는데 그 속엔 또 내가 모르는 낯선 지명들도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상하다. 친척들 주소도 아니고, 친구분들 주소도 아니고...
주소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찡해 왔다.
엄마는 텔레비젼에 나오는 아름답고 좋은 곳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수첩 가득히 메모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언젠가 한번쯤 가봐야지 하시면서...
가슴이 메어 왔다. 이 많은 주소지 중 엄마가 가 보신 곳은 한군데도 없었기에...
가족들 챙기시느라 몸과 마음은 여행을 떠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수첩을 제자리에 놓아 두면서 마음속에 말했다.
"엄마, 엄마가 꿈꾸는 곳으로 제가 한번 모시고 갈께요."
오늘도 저녁을 짓느라 또 한가지 당신의 소망을 지우고 계신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엄마, 사랑해요...
- 무명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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